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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미륵사지> 왕국의 한 조각, 학문적 보물창고, 현대적 의미

by jjoyangstory 2024.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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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은 전북특별자치도 북부에 있으며, 호남의 관문이자 전라도와 충청도의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이기도 합니다. 익산은 산이 더해지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것을 뒷받침하듯 미륵산의 고요한 풍경 속에 숨겨진 보물, 미륵사지 유적지가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백제 왕국의 숨결이 담긴 미륵사를 중심으로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유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백제 왕국의 한 조각

미륵사를 걷다 보면 백제 왕국의 웅장함 속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한때 백제 왕국의 중심에 있던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에 조성된 백제의 최대 규모의 사찰 터로 신라의 황룡사, 고구려의 금강사와 함께 각 나라를 대표하는 사찰입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무왕과 왕비가 용화산(현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만나러 가다가 연못 속에서 출현한 미륵삼조를 영접하고 이를 계기로 연못을 메워 미륵사를 지었다고 하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으며 삼국시대(백제)에는 중앙에 목탑을 두고 동쪽과 서쪽에 석탑을 두었으며, 탑 뒤에 각각 법당을 두고 회랑으로 구획한 3 탑 3 법당 가람배차가 확인되었습니다. 더불어 뒤에는 동쪽과 서쪽에 승방과 함께 거대한 강당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3 탑 3 법당의 가람배치는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출현하는 모습을 가람으로 구상화했다는 점에서 백제 장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구성입니다. 미륵사지는 통일 신라 시대에 들어서 사찰 앞쪽에 2개의 당가지주를 비치하고 이를 둘러싼 회랑을 두었으며, 다시 그 앞에 연못을 둔 형태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약 17세기 경까지는 사찰의 동쪽부터 폐기되면서 이후 작은 규모로 명맥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륵사지에서는 기와류와 함께 토기류, 금속류 등 19,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과 석등의 조영, 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법당의 지하구조와 더불어 출토된 암. 수막새, 녹유서까래기와, 서탑 해체과정에서 출토된 사장엄은 백제문화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는 유물입니다. 미륵사지는 우리나라 전통사찰의 원류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201574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미륵사지의 석탑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석탑이자 가장 큰 석탑으로, 양식상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이 석탑은 백제 석탑의 시원 형식이라고 불리며, 여러 면에서 국내 석탑 전체의 출발점으로 여겨집니다. 화강암을 사용한 이 석탑은 신라식 석탑의 상하기단과 달리, 지복석으로 구획된 사각형의 기단에 사망 3간의 다층탑을 쌓아 올린 것입니다. 서쪽면 전체와 남쪽면 대부분, 북쪽면의 절반 정도가 무너지고 층수도 6층까지 밖에 남지 않아 2013년 보수를 시작하여 20194월에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미륵사지 동탑은 1991년 문화재관리국 주관하에 새로 조성되어, 7층 또는 9층으로 추정되었는데, 동탑의 복원 설계 중에 9층이었음을 알려주는 부자재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후 해체 수리하다가 완전한 형태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으며, 같이 발견된 탑지에서 왕비가 639년(무왕40)에 탑을 건립하면서 사리를 봉안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고대건축의 실제 사례로써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우리나라 불탑건축 연구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학문적 보물창고

미륵사지는 학문적 발견의 보물창고로, 유적지에서 발굴된 수많은 유물이 백제 시대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 줍니다. 1980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륵사지 발굴 조사에서는 2만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1993년 미륵산 사자암 발굴 조사에서 백제 및 통일신라의 기왕와 토기, ‘지치 2년 사자사와’ 명지치2년사자사와’ 암막새등이 출토되어 삼국유사의 기록의 신빙성을 높여줍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와유록, 금마지 등의 문헌기록과 17년간의 발굴 조사를 종합해 보면 미륵사는 백제 무왕의 왕권 강화와 국력 신장을 목적으로 조성한 동양 최대 최고의 국가 사찰이며, 조선 후기 17세기 무렵에는 폐사되었던 것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이는 역사를 단순히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 여행입니다.

미륵사지를 방문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과거와의 연결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적지를 바라보면 수 세기 전 이 땅을 걸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한때 이 신성한 공간을 차지했던 승려, 장인들, 순례자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듯합니다.

 

현대적 의미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미륵사지와 같은 유적지는 우리의 예술적 유산과 역사를 되새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적지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데 흘린 땀은 미래 세대가 계속해서 역사에 관심을 두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미륵사지에서 진행 중인 발굴과 보존 시스템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역사에 대한 연결고리를 이어갈 수 있게 해 줍니다.. 미륵사지는 단순히 역사적 명소를 넘어 학자, 연구자, 역사 애호가들에게 소중한 교육적 기회를 제공합니다. 현장 전시관의 자세한 설명과 교육용 전시물을 통해 백제 왕국과 그 예술 유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포인트의 교육 프로그램과 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깊은 인식은 문학적 소양과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을 제공합니다.

미륵사지는 예술가, 작가, 그리고 창작자들의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정교한 디자인의 사리탑, 고요한 지형, 깊은 영적 기운은 예술, 문학, 음악 등 수많은 여행자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미륵사지 방문객들은 새로운 창의성과 옛 선조들의 아름다움과 지혜에 대한 깊은 감사를 느끼며 미륵사지를 다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 새로운 아이디어와 관점을 불러일으키는 곳입니다. 요약하자면 미륵사지는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보물 같은 곳입니다. 감탄을 자아내는 거대한 석탑부터 흥미로운 흔적들, 고요한 주변 환경까지 미륵사지의 모든 요소가 여행객들을 백제 삼국의 장엄하고 찬란했던 시절로 돌아가게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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