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가 한참 가을단풍이 절정으로 오르는 시기라고 합니다. 이런저런 여건으로 여행 일정을 길게 잡기 어렵다면 당일로도 다녀올 만한 여행지가 많이 있는데요. 그중 가을 경주를 당일로 둘러볼 수 있는 코스 정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황리단길
- 젊음과 옛 정취가 공존하는 핫플레이스
● 경주 황리단길은 경주에서 가장 젊고 활기찬 거리로, 황남동과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합쳐 '황남동의 경리단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내남사거리에서 시작해 황남초등학교 사거리까지의 도로를 기준으로 양쪽의 황남동과 사정동 일대를 포함합니다.
● 1960~70년대의 낡은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방문객들은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현재는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분위기 좋은 카페, 아기자기한 소품, 기념품 가게, 개성 있는 식당들도 많이 들어서 볼거리가 다양해졌습니다.
● 초기에는 도로변을 중심으로 상점들이 들어섰으나, 황리단길 외연이 확장되면서 골목골목마다 개성 있는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첨성대
- 경주의 랜드마크 신라의 천문 관측소
● 첨성대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입니다. 이 천문대는 삼국시대 신라의 천문 관측소로, 세계적으로 현재까지 원형을 유지한 천문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첨성대는 높이가 약 9m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 자형의 정상부를 얹은 모습입니다.
-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습니다.
- 동쪽 절반이 판도라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 자 모양으로 맞물린 기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 있습니다.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진 첨성대의 모양은 하늘과 땅을 형상화했습니다.
- 첨성대를 만든 365개 내외의 돌은 1년의 날수를 상징합니다.
- 27단의 돌단은 첨성대를 지은 27대 선덕여왕을 상징하며, 꼭대기 정자석까지 합치면 29단과 30단이 되어 음력 한 달의 날수를 상징합니다.
- 창문을 기준으로 위쪽 12단과 아래쪽 12단은 1년 12달, 24절기를 표시합니다.
● 첨성대는 하늘의 움직임을 계산해 농사 시기를 정하고, 나라의 길흉을 점치는 용도로 활용되었습니다. 옛 기록에 따르면,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첨성대는 경주 수학여행에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관광지로,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명소입니다.
드라마 <20세기 소녀>에서 주인공이 단체 사진을 찍던 장소로, 한류 팬들에게도 인기가 많으며, 첨성대 주변으로 계절을 대표하는 꽃과 식물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서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추천되는 곳입니다.
동궁과 월지
- 신라 왕궁의 별궁과 아름다운 연못
●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로,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었으며,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푼 장소입니다. 이곳은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입니다.
● 신라가 멸망한 후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와 '안압지'로 불렸으나, 1980년대에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면서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월지'는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북·동쪽으로 12 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습니다.
●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지나가면서 많은 훼손을 입었으나,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 크고 작은 건물 터 26곳이 확인되었습니다.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 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가 복원되었습니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보상화 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해 줍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는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연못 구조: 월지는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입니다.
● 동궁에는 임해전을 비롯해 총 27동의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현재는 3채만 복원되었습니다. 복원된 건물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과 월지에 반사된 모습은 경주의 대표 야경 명소로 손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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